김종률씨가 보내온 종중산에 부모님의 묘소를 쓰게 된 경위는 이랬다.
① 김종률씨의 선친은 1970년경 충장공파 종중의 재무이사로 있을 무렵 공로를 인정받아 종중으로부터 종중산에 묘를 쓰도록 미리 승낙을 받고 가묘(假墓)를 설치하였다가 돌아가신 후에 묘를 썼다.
② 김종률씨의 선친은 1985년 12월에 돌아가셔서 그 때 가묘(假墓) 자리에 모셨다.
③ 김종률씨의 어머니가 1997년 7월경 돌아가셔서 선친의 묘에 합장을 하였다.
④ 종중은 지금까지 한 번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김근중 변호사는 김종률씨에게 1970년경 종중의 승낙을 받았다는 증거가 있는지 물었다. 김종률씨는 1969년 종종총회에서 종중원들이 종중산에 묘를 쓰는 것에 대하여 회장단에게 일임하되 사용료 액수는 총회에서 결정하기로 한 회의록과 김종률씨의 선친이 재무이사로서 활동한 자료가 있다고 하였다. 김근중 변호사는 1969년 총회에 따라 회장단이 김종률씨의 선친에게 묘를 쓰도록 허락한 자료가 있는지 물었다. 김종률씨는 그러한 직접적인 증거는 없고, 당시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분이 계시기는 한데 1923년생으로 연로하여 증언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김근중 변호사는 종중의 승낙이 있었다는 부분은 증거가 부족하여 인정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김근중 변호사는 소유자인 종중의 승낙 없이 분묘를 설치하였다고 하더라도 20년간 평온, 공연하게 분묘의 기지를 점유하면 지상권과 유사한 관습상의 물권인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한다고 설명했다. 평온한 점유란 점유자가 점유를 취득 또는 보유하는데 있어 법률상 용인될 수 없는 강포행위를 쓰지 않는 점유이고, 공연한 점유란 은비(隱祕)의 점유가 아닌 점유를 말하므로, 임야 소유자가 세운 경고판을 넘어뜨리고 분묘를 설치한 것은 평온한 점유에 해당하고, 봉분 등 외부에서 분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경우에 한하여 인정되고, 평장(平葬)되어 있거나 암장(暗葬)되어 있어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외형을 갖추고 있지 아니한 경우에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대법원 1996.6.14. 선고 96다14036 판결).
김근중 변호사는 분묘기지권을 시효 취득하는 경우 등기가 취득요건이 아니며, 분묘의 수호와 봉사(奉祀)를 계속하는 한 분묘가 있는 동안 존속하고, 지료는 무상이라고 했다. 분묘기지권의 범위는 분묘의 기지 자체뿐만 아니라 그 분묘의 수호 및 제사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분묘의 기지 주위의 공지를 포함한 지역에까지 미치고, 그 확실한 범위는 각 구체적인 경우에 개별적으로 정해진다고 했다(대법원 1994. 12. 23.선고 94다15530 판결 참조).
김근중 변호사는 이 사건의 핵심은 김종률씨의 어머니를 1997. 7. 5. 선친의 묘에 합장한 것이라고 했다. 분묘기지권은 이미 설치되어 있는 분묘를 소유하기 위해서만 타인 소유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므로 분묘기지권의 범위 내라도 새로운 분묘 설치는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부부일방이 먼저 사망하여 분묘 설치 후 사망한 다른 일방을 단분 형태로 합장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근중 변호사는 김종률씨 어머니의 유골을 합장하여 그 부분에 대해서는 분묘기지권을 취득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아버지의 분묘기지권의 취득시효 진행을 방해하지 않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본다면 어머니의 유골 부분에 대하여만 철거 또는 이장해야하는 상식에 반하는 결과가 발생한다고 했다. 김근중 변호사는 걱정하는 김종률씨에게 어머지의 유골부분에 대해서는 분묘기지권이 아니라 권리남용을 주장하여 막아야 한다고 했다.
김근중 변호사는 모든 주장이 받아들여진다고 하더라도 분묘기지권의 범위는 현장검증과 감정을 통하여 별도로 정해질 것이며, 임료산정을 위한 감정평가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근중 변호사는 아래와 같은 취지로 답변서를 작성, 제출했다.
① 이 사건 분묘의 관리처분권은 장남인 피고 김종률에게 있으므로 나머지 피고들에 대한 청구는 그 자체로 이유 없다.
② 피고 김종률의 부 망 김□□이 종중의 재무이사로 있을 때 1970년경 종중산에 묘를 쓰도록 미리 승낙을 받고 가묘(假墓)를 설치하였다가 1985. 12. 14.에 돌아가셔서 가묘(假墓) 자리에 분묘를 설치했고, 피고 김종률의 모 망 박△△가 1997. 7. 5.에 돌아가셔서 합장을 하였으므로 정당한 권원이 있다.
③ 이 사건 분묘가 설치된 1985. 12. 14.부터 20년 이상 평온, 공연하게 분묘를 유리 관리하여 왔으므로 분묘기지권을 시효취득하였다.
상대방의 준비서면이 송달되었다. 상대방은 김종률씨 외 다른 피고들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고, 김종률씨의 어머니를 시효취득 완성 전인 1997. 7.에 합장하였으므로 분묘기지권을 시효취득하지 못하였다고만 주장했다.
김근중 변호사는 비록 분묘기지권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 내라고 할지라도 기존의 분묘 외에 새로운 분묘를 신설할 권능은 포함되지 않으므로 부부 중 일방이 먼저 사망하여 이미 그 분묘가 설치되고 그 분묘기지권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후에 사망한 다른 일방을 단분 형태로 합장하여 분묘를 설치하는 것도 허용될 수 없지만, 그러한 경우라도 뒤에 합장한 유골 부분에 대하여만 철거 또는 굴이를 청구할 수 있을 뿐인데(대법원 2001. 8. 21.선고 2001다28367 판결 및 환송심 판결인 서울지방법원 2001. 11. 21.선고 2001나52352 판결 참조), 분묘기지권이 인정되는 범위 내의 이 사건 분묘에 망 박△△의 유골이 합장되었다 하더라도 합장 전후의 분묘의 형태, 크기 등이 변동되지 아니하여 분묘기지권의 범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 점, 원고 종중은 어차피 분묘기지권에 의한 제한을 용인하여야 하므로 합장으로 인하여 분묘기지권의 존속기간이 더 딜어지는 것도 아니고 분묘의 일부 굴이를 명하는 판결이 원고 종중에게 주는 아무런 실익도 없는 점, 부부 사이의 합장이 관습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현실에서 합장된 분묘의 일부를 굴이하라는 판결은 일반 국민의 법 감정에도 현저히 반하는 점, 피고는 원고의 종중원인 점, 이 사건 임야에 다른 종중원들의 분묘가 다수 설치되어 있는 점, 원고와 피고 사이의 분쟁 경위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분묘 중 망 박△△ 부분의 철거 또는 굴이를 구하는 원고의 청구는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준비서면을 제출하였다.
제1회 변론기일에서 원고는 청구취지와 청구원인을 간략히 진술하였고, 피고들의 소송대리인 기근중 변호사도 준비서면의 내용을 간략히 진술하였다. 판사는 원고에게 피고 김종률 외 다른 피고들에 대한 청구를 유지할 것인지 석명을 구하였다. 원고의 소송대리인은 유지하겠다고 하였다. 원고는 임료산정을 위한 감정과 분묘기지권의 범위를 정하기 위한 감정신청을 하였다. 판사는 현장검증 기일을 정하고 변론을 마쳤다.
김근중 변호사는 김종률씨에게 변론기일의 재판내용을 전달했다. 김종률씨는 상대방이 다른 형제들에 대한 청구를 취하하지 않는 것은 처음부터 김종률씨를 괴롭히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근중 변호사는 현장검증 날짜와 시간을 알려주고 그 때 묘소에서 보자고 했다.
현장검증이 있는 날, 김근중 변호사는 묘가 있는 종중산 밑에서 김종률씨를 만나 판사와 직원, 감정인을 기다렸다가 함께 산으로 올라갔다. 김근중 변호사는 판사에게 분묘가 단분 형태로 되어 있는 점, 분묘 외에 제사를 모시는 범위 외에 면적이 넓지 않은 점, 인근에 다른 종중원의 분묘가 여러 개 있는 점을 설명했다.
감정결과가 도달하였다. 분묘기지권의 범위는 225㎡ 중 86㎡가 인정되고, 나머지 139㎡ 부분에 대한 현재의 임료는 월 11,480원이고, 과거의 임료는 연도에 따라 조금씩 적었다. 김종률씨는 어머지의 유골을 옮기라는 판결만 나오지 않으면 범위나 임료는 괜찮다고 하였다. 김근중 변호사는 권리남용 항변이 받아들여질지 여부가 관건이라고 했다.
2회 변론기일에서 판사는 감정결과가 도달한 사실을 고지하고, 쌍방이 더 할 것이 없다고 하자 변론을 종결하고 판결 선고는 4주 후로 지정하였다. 종중의 승낙이 있었다는 증언을 해줄 증인이 출석할 수 없어서 증인신청을 하지 못한 것이다.
김종률씨는 어머니의 유골만 이장하는 결과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판결 선고 날짜가 다가올수록 걱정이 컸다. 김근중 변호사도 어느 재판보다 판결결과가 궁금했다.
김근중 변호사는 판결문을 받고 바로 김종률씨에게 결과를 전했다. 종중의 승낙을 받아 분묘를 설치했다는 주장은 인정할 증거가 없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권리남용이 김근중 변호사의 주장대로 받아들여져 부모님 모두 분묘기지권이 인정되는 결과가 되었으며, 분묘기지권의 범위와 임료는 감정결과대로였다. 분묘기지권이 인정되지 않는 139㎡도 석축이 아니라 잔디와 작은 나무 몇 그루이므로 굳이 철거할 필요가 없어서 과거 10년 동안의 임료 1,293,005원과 장래 월 11,480원을 지급하면 되므로 부담이 없었다. 김종률씨는 판결결과에 만족하였다. 김종률씨는 종중이 대법원까지 갈 것이라고 하였고, 김근중 변호사도 같은 생각이라고 했다.
충장공파종중은 항소하였으나, 한 번의 재판만으로 종결되고 항소기각 되었다. 충장공파종중은 대법원에 상고까지 하였으나 심리불속행기각으로 확정되었다. 김근중 변호사는 항소심의 수임료는 1심의 절반, 성공보수는 없는 것으로 하였고, 상고심 수임료는 법무사비용 정도의 답변서 작성료만 받았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