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씨는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문을 읽었다고 했다. 김영준씨는 역사 논문에 비해 추론과정이 분명하나, 문장이 길어서 낯설다고도 했다. 하나의 사실관계에 대해서 찬반이 갈라지고, 거기에 다시 논거를 달리하는 보충의견을 보고 우리 사회의 합의과정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고 했다.
김근중 변호사는 김영준씨의 말에 동의했다. 김근중 변호사는 최근 법률문장도 쉬운 말로 많이 바뀌고 있다고 했다. 판결문은 누가 보더라도 같은 의미로 읽혀져야 되기 때문에 표현이 딱딱하고 어색할 수도 있다고 했다.
김영준씨는 충장공파종중의 그 뒷이야기를 궁금해 했다. 김근중 변호사는 종중이 김종률씨에게 분묘철거소송을 제기하는 것과 별개로 종중총회에서 김종률씨 등에 대한 이사해임을 추인하려고 하여 총회와 관련하여 다시 다툼이 생겼다고 했다. 김근중 변호사는 충장공파종중의 정기총회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종중총회가 회사나 다른 단체의 총회와 다른 특징에 대해서 설명했다.
종중뿐만 아니라 회사나 모든 단체의 총회가 적법하기 위해서는 정관이나 법에서 정하고 있는 소집절차가 가장 중요해요. ① 소집권자가 ② 구성원 모두에게(주주, 회원 등) ③ 정관에서 정하고 있는 방법으로 소집통보를 해야 하는 것이지요. 총회가 적법한 지에 대한 다툼이 많은데, 대부분 소집절차를 준수하였는지 여부가 문제에요.
그런데 종중은 좀 특이해요. 다른 단체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바로 종중원이 누구인지 다 알 수 없다는 것이 제일 큰 차이예요. 그렇잖아요. 종중 자체가 특별한 설립절차 없이 공동선조의 제사와 분묘수호, 종원 상호간의 친목을 위하여 그 후손들로 자연발생적으로 성립하는 것이니 전국에 흩어져 있는 후손들을 다 알 수 없는 게 당연하겠지요. 그래서 종중총회의 특징 중 첫 번째가 종중원의 범위를 정하는 것이에요. 회사나 다른 단체는 주주명부나 회원명부가 있어서 그 명부에 있는 구성원들에게 소집통보를 하면 되지만, 종중은 그렇지 않은 것이지요. 그러면 총회 소집통보를 할 종중원의 범위를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요. 종중 임원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의를 하기 위해서 자신들이 아는 종원들에게만 소집통보를 하여 무효가 되는 일도 많아요. 종중총회의 소집통보를 위한 종중원의 범위에 대해서 대법원이 기준을 제시하고 있어요.
“종중이 그 총회를 개최함에 있어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세보에 기재된 모든 종원은 물론, 기타 세보에 기재되지 아니한 종원이 있으면 이 역시 포함시켜 총회의 소집통지대상이 되는 종원의 범위를 확정한 후 소재가 분명하여 연락 가능한 종원에게 개별적으로 소집통지를 하여야 한다(대법원 2000. 7. 6. 선고 2000다17582 판결 참조)”는 것이에요. 우선 족보를 기준으로 하고, 족보에 등재되지 않았더라도 前 총회에 참석하였거나 다른 경유로 종중원임을 알고 있는 사람 모두가 소집통보 대상이 되지만, 족보에 등재되어 있더라도 족보에는 주소나 연락처가 없기 때문에 그 중에서 연락가능한 모든 종중원에게 소집통보를 하면 되는 것이지요. 매년 정기총회를 하고 있는 종중은 별 문제가 없으나 처음 총회를 하는 종중은 소집통지 대상이 되는 종중원의 범위를 정하는 것이 어려워요.
또 종중총회의 특징 중 하나가 소집권자에 대한 것이에요. 대표자가 총회의 소집권자가 되는 것은 모든 단체가 다 똑 같아요. 단체에서 대표자가 없을 수 있을까요. 단체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대표자가 필수적이잖아요. 대표자에게 유고가 있거나 궐위가 되더라도 정관에서 대표자를 대행할 직무대행자를 정해 놓기 때문에 총회 소집권자 문제는 생기지 않지요. 보통 부회장이 회장 직무대행을 하지요. 그런데 종중은 달라요. 이제 눈치 채셨겠지만, 바로 종중이 자연발생적으로 성립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예요. 대표자인 회장은 총회에서 선출해야 하는데, 종중은 다른 단체와 달리 창립총회가 없기 때문에 처음 대표자를 선출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대법원은 “종중은 공동선조의 후손 중 성년 이상을 종원으로 하여 구성되는 종족의 자연발생적 집단이므로, 그 성립을 위하여 특별한 조직행위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그 목적인 공동선조의 분묘 수호, 제사 봉행, 종원 상호간의 친목을 규율하기 위하여 규약을 정하는 경우가 있고, 또 대외적인 행위를 할 때에는 대표자를 정할 필요가 있는 것에 지나지 아니하며, 반드시 특별한 명칭의 사용 및 서면화된 종중규약이 있어야 하거나 종중의 대표자가 선임되어 있는 등 조직을 갖추어야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대법원 1997. 11. 14. 선고 96다25715 판결 참조).”라고 한다는 것을 지난번에 말씀드렸지요.
그럼 처음 종중 대표자 선출을 위한 총회는 누가 소집해야 할까요? 연고항존자(年高行尊者)가 소집권자가 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가 인정하고 있는 관습이에요. 대법원은 “종중 대표자의 선임에 있어서 그 종중에 규약이나 일반 관례가 있으면 그에 따라 선임하고 그것이 없다면 종장 또는 문장이 그 종원 중 성년 이상의 남자를 소집하여 출석자의 과반수 결의로 선출하며, 평소에 종중에 종장이나 문장이 선임되어 있지 아니하고 선임에 관한 규약이나 일반 관례가 없으면 현존하는 연고항존자가 종장이나 문장이 되어 국내에 거주하고 소재가 분명한 종원에게 통지하여 종중총회를 소집하고 그 회의에서 종중 대표자를 선임하는 것이 일반 관습이라 할 것이다(대법원 1997. 11. 14. 선고 96다25715 판결 참조)”라고 판시하고 있는 것이지요. 연고항존자는 항렬(行列)이 가장 높고 나이가 많은 사람이에요. 종중의 대표자가 없으면 연고항존자가 총회 소집권자가 된다는 것이 종중총회의 특징이 되는 것이지요.
또 하나 있어요. 선배님도 시골에서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촌에서 문중회의 할 때 따로 소집통보도 하지 않고 시제나 한식, 또는 명절 전후에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끼리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아예 소집절차 자체가 없는 것이지요. 그럼 이런 총회(문중회의)는 적법할까요. 이런 총회는 규모가 작은 종중에서 많이 하는데 다툼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매년 열리는 문중회의는 물론이고 시제에도 한 번 참석하지 않은 종중원이 어느 해에 나타나서 종중의 재산처분이나 대표자 선임 등 총회결의가 무효라고 다투는 것이지요. 자기 주소나 연락처를 알면서도 그동안 한 번도 자기에게 소집통보를 한 적이 없으니 무효라면서요. 실제로 참 난감한 경우가 많아요. 어떨 것 같아요. 소집절차 없이 개최된 이런 총회는 적법할까요. 이렇게 묻는 걸 보면 적법하겠지요. 역시 대법원 판례가 있어요. 종중에 관한 다툼은 거의 대부분 대법원 판례가 있다고 봐도 될 정도로 판례가 많이 축적되어 있지요. “종중의 규약이나 관행에 의하여 매년 일정한 날에 일정한 장소에서 정기적으로 종중원들이 집합하여 종중의 대소사를 처리하기로 되어 있는 경우에는 종중총회 소집절차가 필요하지 아니하다(대법원 1995. 6. 16. 선고 94다53563 판결 참조)”는 것이에요. 보통 시제를 지내고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끼리 대소사를 처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에는 소집절차 자체가 필요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게 말처럼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요. 정관에 정기총회일은 정해져 있으니 매년 일정한 날에 열리는 것은 맞는데 통상 재실이나 공동선조의 묘소 아래에서 총회를 하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있는 경우에 소집절차가 필요한지 여부가 문제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지요.
김영준씨는 김근중 변호사의 설명을 듣고 종중총회와 관련한 분쟁이 많겠다고 하였다. 김근중 변호사도 종중의 대부분 문제는 종중총회와 관련된 것이라고 하였다. 김근중 변호사는 김해김씨충장공파종중의 정기총회 문제는 종원등록제와 관련된 것이라고 하였다. 충장공파종중은 종중원이 약 15만 명이 되는 전국에서 손꼽을 정도로 큰 종중이기 때문에 해매다 총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종중원이 맞는지 다툼이 있었기 때문에 등록을 한 사람만 총회참석을 허용하겠다는 것이었으나, 사실은 집행부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의를 하기 위한 꼼수라는 것이 김종률씨 등의 의견이라고 하였다.
(다음에 계속)